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あまく危險 な香り

그리스인 조르바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p. 172

   잡다한 생각이 내 머리를 어지럽게 했다. (이 땅의 만물은 어쩌면 이다지도 서로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일까. 대지는 어쩌면 인간의 심장과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일까. 인생을 깡그리 써버리고 이 외로운 해안으로 유배된 퇴물 카바레 가수는 이제 이 초라한 방을 신성한 욕망과 여자의 따사로운 정으로 채우고 있지 않은가! 정성을 다하여 푸짐하게 보아 놓은 상, 따뜻한 화덕, 화장하고 꾸민 몸, 오렌지 꽃물 향기...... . 이같이 사소한 육신의 즐거움이 어쩌면 이다지도 빨리, 그리고 간단하게 엄청난 정신의 즐거움으로 변하는 것일까?)


p. 174

   「진정한 행복이란 이런 것인가. 야망이 없으면서도 세상의 야망은 다 품은 듯이 말처럼 뼈가 휘도록 일하는 것...... . 사람들에게서 멀리 떠나,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되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것...... . 성탄절 잔치에 들러 진탕 먹고 마신 다음, 잠든 사람들에게서 홀로 떨어져 별은 머리에 이고 뭍을 왼쪽, 바다를 오른쪽에 끼고 해변을 걷는 것...... . 그러다 문득, 기적이 일어나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동화되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 . 」


p. 222

...... 제발 내 말에 귀를 기울여요.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자는 자유를 원하지 않아요. 그런데 여자도 인간일까요?

   제발 빨리 좀 대답해 줘요.

   우리 두목에게 행운이 있기를 빕니다. 

나, 알렉시스 조르바


p. 226

   나는 한동안 화살에 꿰뚫린 심장이 그려진, 향긋한 편지를 쥔 채, 그와 함께 보냈던, 그의 존재감으로 가득 찼던 나날들을 생각했다. 시간은 조르바와의 만남에 새로운 흥취를 더했다. 조르바와의 만남은 외부 사건의 수학적인 연속도, 내부의 해결할 수 없는 철학적인 문제도 아니었다. 결이 고운, 따뜻한 모래 같은 것이었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로 부드럽게 빠져나가는 모래를 감촉할 수 있었다.

   나는 중얼거렸다. 「조르바에게 복 있을진저. 조르바는 내 내부에서 떨고 있는 추상적인 관념에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살아 있는 육체를 부여했다. 조르바가 없으면 나는 다시 떨게 되리라.」

   종이 한 장을 꺼내었다. 그러고는 인부 한 사람을 불러 조르바에게 지급 전보를 치게 했다.

   〈즉시 돌아올 것.〉


p. 238

   내가 불렀지만 그는 듣지 못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제야 나를 본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인생이 불쌍하지. 청춘을 그렇게 낭비해 버리다니. 가엾은 녀석, 슬픔을 감당 못 해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져 빠져 죽다니. 이제야 구원을 받았구나.」

   「구원을 받아요?」

   「받았지요, 젊은이. 받았고말고. 살아 보아야 뭘 하겠소? 과부와 결혼해 봐야 좀 살다 보면 부부 싸움질이나 하다 얼굴에 똥칠이나 하지. 이 계집은 암말과 같아서 부끄러운 줄을 몰라요. 사내만 보면 발정을 내지. 과부와 결혼하지 못하면 평생이 불행이고, 결혼하겠다는 생각이 대가리에 꼭 박혀 있었으니 제 팔자 제가 구겨 놓았던 것 아니오? 죽자니 청춘이요, 살자니 고생이라!」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 아닙니다, 아나그노스티 영감님. 영감님 말씀 들으면 살 마음 싹 가시고 말겠어요.」

   「이것 봐요, 그렇게 학을 뗄 일만은 아니오. 당신 말고는 아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까. 들어 봐야 내 말 같은 걸 믿을 줄 아시오! 날 봐요, 나보다 복 많은 사람 또 있겠소? 밭이 있겠다, 포토밭, 올리브 과수원에다, 이층집이 있겠다, 돈도 있겠다. 마을 장로겠다, 착하고 정숙한 여자와 결혼해서 아들딸 낳았겠다, 나는 이 여자가 내 말에 반항하여 눈꼬리 치켜뜨는 꼴도 본 적이 없소이다. 거기에다 내 아들들도 모두 아이 아비가 되이 있겠다. 내겐 불만이 없어요. 뿌리가 깊이 내렸으니까. 그러나 이놈의 인생을 또 한 번 살아야 한다면 파블리처럼 목에다 돌을 꼭 매달고 물에 빠져 죽고 말겠소. 인생살이는 힘든 것이오. 암, 힘들고말고...... . 팔자가 늘어져 봐도 별수가 없어요. 저주받아 마땅하지.」

.

.

   「오냐, 파블리, 너 잘했다. 계집들이야 울고불고하게 놔둬라, 워낙 골이 빈 것들이니까. 파블리, 너는 이제 구언을 받았느니라, 네 아버지도 그걸 알고 있어서 일언반구도 없었던 게야!」


p. 261

마음 한번 먹었으면 밀고 나가라, 후회도 주저도 말고.

고삐는 젊음에게 주어라, 다시 오지 않을 젊음에게.

네가 너를 잃지 않는 순간은 네가 이기는 순간!


p. 314

   「그럼 조르바, 당신이 책을 써보지 그래요? 세상의 신비를 우리에게 설명해 주면 그도 좋은 일 아닌가요?」 내가 비꼬았다.

   「못 할 것도 없지요. 하지만 못 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나는 당신의 소위 그 〈신비〉를 살아 버리느라고 쓸 시간을 못 냈지요. 때로는 전쟁, 때로는 계집, 때로는 술, 때로는 산투르를 살아 버렸어요. 그러니 내게 펜대 운전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어요? 그러니 이런 일들이 펜대 운전사들에게 떨어진 거지요. 인생의 신비를 사는 사람들에겐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살 줄을 몰라요. 내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