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낄낄대며 보는 책.
모순에 관한 이야기가 나를 한참을 붙들어 놓고 있다.
페이지를 왔다갔다 읽고 또 읽고
낄낄대다 골똘해지고.
p.155
어떤 사람이 비서한테는 친절하지만 배우자에게는 야수처럼 굴 수 있고, 수학은 잘하지만 감정 처리에는 무능하며, 수플레는 잘 만들지만 양고기에는 젬병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우리는 야생동물 보호 모임에 가입하여 사회적인 책임감을 덜면서도, 히틀러가 어린이와 동물을 사랑했다는 말은 듣기 싫어한다. <백설 공주>를 보면서 우는 자신을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여기지만, 독재자 이디 아민이 그 영화를 제일 좋아했다는 말은 싫다. 독일 문학을 좋아하면서도, 연합군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해방하러 들어갔을 때 독일 친위대 장교들의 소지품에 괴테의 책들이 들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면 편치 않다. 단지 <시와 진실>에 나오는 구절에 감명 받았다는 이유로 자신은 대량 학살범이 될 잠재성을 벗어버렸다고 생각하는 편이 유쾌하지 않은가?
가여운 플로베르를 다룬 다른 전기를 넘겨보면, 전기 작가가 이 저명한 문인을 '모순으로 꽉 찬' '이상한 동물'로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자신을 질서와 안락, 계급 제도를 좋아하는 골수 부르주아로 느꼈기 때문에, 부르주아에 대한 그의 혐오는 더욱 강해졌다. 모든 정부를 비난했으나, 정부 전복을 꾀하는 지나친 폭력은 참지 못했고...... 사제들의 원수였으나, 종교적인 문제에 끌렸다. 여성의 매력에 끌렸지만, 어떤 여자에게 반하는 것도 거부했다. 예술 면에서는 개혁적이었지만, 일상생활은 보수적이었다. 우정을 갈구하면서도 사람들과 떨어져서 살았고......
p. 159
에릭의 기찻길
선(禪) 철학의 고요함에 감탄 - 규칙적으로 화를 냄
체계가 잘 잡힌 것을 아주 좋아함 - 자주 늦게 전화함
정신지체인을 돕는 단체에 기부 - 바보들을 기꺼이 참아주지 않음
어느 날은 사랑이 넘치고 - 이튿날은 무관심
잘 공감해줌 - 그러다가 극도로 이기적이 됨
인간관계에 대해 통찰력이 있음 - 자기 경우는 보지 못함
- 우리는 사랑일까 <알랭 드 보통>
우린 이렇게 모순 덩어리인 거다.